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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11:58
1979~1984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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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4의 추억
- 글, 사진: 2기 김종욱
- 2000년 7월 3일 관리자 입수
1979년

탈꾼들의 주막(1기 와 2기)
당시에는 5월 축제 기간 중 동아리 별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대성로 입구 우측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는 막걸리, 파전 등으로 아주 인기있고 손님 많았던 주막으로 축제 내내 돈도 많이 벌은 걸로 기억되는데.(그때 1학년이라 번 돈의 행방에 관심 가질 수 없었음.) 사실 장사하면서 우리가 먹은 게 더 많았던 것도 같고. 맨 밑줄 왼쪽이 현재 독일 뮌헨대학에 있는 김희상(2), 맨 오른쪽은 미모의 김미혜(1)-1기 이춘화 선배의 아내, 가운데 왼쪽부터 김순범 서일대 교수(1), 앞치마 유용기(2), 키타 든 사람 김종욱(2), 큰 안경 최희영(1), 바로 윗줄 왼쪽 공포의 곽정심(1) 누나 와 조근만(1) 집사님, 서 있는 사람 좌로부터 권순학(1) 공인회계사, 참 인자했던 조임숙(1) 누나, 맨 우측이 머리 크다는 이상호 교수(2).
1980년

전북 임실 농악 전수시의 누구 생일 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전부 시커먼스 인데, 표정은 너무 밝다. 가운데 눈이 큰 이예성(3기, 당시 1학년)양의 생일을 맞아 100원 짜리 카스테라에 성냥개비를 나이대로 꼽아 축하해 주었더니, 감격해서 그런지, 고생해서 집 생각이 나서 그런지 두 눈가에 그만.... 맨 밑 박병택(2), 2번째 줄 좌로부터 박희성(3), 이예성(3), 유용기(2), 그 윗 줄 왼쪽 김종욱(2), 그리고 한계연(2), 4명 있는 왼쪽부터 조원민(2), 남수현(2), 안치흥(3), 인숙이(3), 맨 위가 경남 양산에서 약국 하는 한미혜(3)-지금도 찾아가면 항상 피로회복제 와 박카스 준다.

금잔디 강령탈춤 취발이 과장중.
취발이 : 조근만(1), 소무 : 양혜영(2), 노승 : 김종욱(2) 왼쪽에 의상입고 한계연(2), 한계숙(2)이 다정하게 앉아 있네. 생미과에서 중간에 불문과로 전과한 이 한계숙 선수 당시 전교에서 유명했다.
1981년

양주별산대 전수 시절의 3 총사.
야사에 나오는 바로 그 때 찍은 사진으로, 이상호(2)가 즐겨 내렸던 희생자들의 빨간, 그리고 까만 츄리닝 바지가 보인다. 그 날은 2기 한모 군(이름 못 밝힘, 결혼해서 잘 살고 있기에.)의 여자 친구(문모 양, 당시 Y대 2년)가 우리 면회 온다는 연락을 시외 전화로 받고(그때는 삐삐, 핸드폰 이런 것 없었음), 전수관 입소한 후 처음으로 머리 감고 이 닦은 날임.(물이 얼마나 차가왔던지.) 아침부터 수선을 떨은 덕분에 그 날 뭔가 맜있는 위문품을 듬뿍 받았는데...(아, 쵸코파이였다.) 좌로부터 김종욱(2), 이광호 동문회장(3), 이상호(2)-머리 진짜 디따 크죠 ?

탈반 4기 즐거운 야유회
4기들(참, 골치 아팠던 기수다. 지금까지도)이 어느 날 춤 연습 때, 입학하지도 얼마 안된 쉐파란 아해들이 건팡지게 항명 사건으로 빠따 맞은 적이 있었다(그때 주동이 김대영으로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 기분전환으로 당시 회장 김종욱(2)-왼쪽 두 번째 와 부회장 최인희(3)-맨 오른쪽 만 동반하여 1학년(4기)들과 동구능(?)가서 찍은 사진. 맨 위쪽 폼 잡고 서 있는 친구가 지금 탈반 유럽지부장(덴마크 거주) 김종보, 바로 왼 쪽이 지금 문일 중학교에서 완전 무게잡는 윤태현 과학 선생님. 빠따 사건 다 잊어 버리고 장난치는 모습들이 역시 순진하고 1학년 같다. 그런데, 맨 우측 밑 탈반의 종약서원 최현룡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아도 학생으로 보기 어렵다.

양주별산대 제문낭독
마당극은 어림 없고, 공연을 위한 제문도 사전 검열 받던 딱한 시대, 지금은 없어진 금잔디 광장의 상징인 조개탑(소라껍질이라고도 함)앞에서의 양주별산대 정기공연. 그때는 공연 때면 참 관람객 많았다. 공연 포스터가 붙으면 진짜 명륜동 일대 아줌마들도 구경하러 오셨다. 유용기(2) 아버님, 어머님, 시골집 아저씨는 단골로 오셨고... 지금 보니 머리 참 지저분하게 기네. 김종욱(2)입니다. 바로 뒤에 엎드려 있는 안치흥(3)의 엉덩이춤이 참 일품이었는데.(배역 이름이 생각 안나네.) 맨 우측에 우리 현주(4)가 보이고..

3기들 행복해서 크게 웃던 날
김종욱(2) 군대가기 전 날 시골집에서 환송회 하는 도중 3기들이 합심하여 시골집앞 사진관에서 찍은 기념사진.(술 먹다 1,2기 선배 와 4기 후배는 빼고 김종욱 과 3기들만 찰칵.) 선배 한 명 군대 가는게 그렇게 좋고 행복한 지 전부 다 활짝 웃고 있다. 줄무늬 남방이 김종욱(2), 바로 우측에 앉은 최인희(3)양만 슬픈 표정이다. 사진 맨 뒷줄 반창고 붙인 故 홍문선(약대 졸업후 의약사업을 하다 그만 금년에 암으로 타계함) 과 그 친구가 오른팔로 안고있는 故 이상준(불문과 졸업후 대전에서 신문사 기자 생활 하다가 작년에 타계함) 두 탈꾼의 모습과 그들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저버림이 다시 한번 안타깝고 가슴을 저미게 한다.
1984년

율전 마라톤 대회 4인방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축제 기간중 마라톤 대회가 있었음.(남자 3명에 여자 1명이 한 팀으로 뛰게됨.) 운동장 앞에서 출발전 대기 하면서 1장 찰칵.(다 뛰고 들어 왔을 때의 퍼져 있는 모습은 너무 처참해서 차마 공개 못 함.) 탈반 대표 좌로부터 한계연(2), 김성아(6), 최영우(2), 김종욱(2). 복학한 형들 과 계속 1등으로 같이 뛴 성아의 파이팅이 눈부셨으나, 그만 이 학생 전 날 술먹은 게 안 깨서 꼴인 직전 약 200미터 전방에서 전날 먹은 것 다시 눈으로 확인 하면서 퍼져 버렸다.(우리의 그때 그 시절 안주 없이 술 먹던 시대를 대변하듯 정말 물만 나왔다.) 교대로 등에 짊어지고 겨우겨우 들어가 그래도 10등 했다.(사람 일단 퍼지면 남녀 상관없이 엄청 무겁다는 것 깨달음.) 지금 내일신문 성문제연구소장으로, 제2의 구성애로 EBS방송에도 고정 출연한다는 우리 성아양은 오후에 벌어진 노래자랑에 나가서 민요를 걸지게 부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공연 마치고 한방.
거기가 무슨 큰 체육관이었는데..(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 학교측에서 체육관을 빌려 신입생 입학 축하 공연을 했던 걸로 기억됨.) 2기, 3기, 4기, 5기, 6기들의 얼굴이 두루 보임. 사진을 유심히 보면 제일 중앙에 웬 조그만 것들이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는데, 당시 1학년 때부터 저러더니, Now 애 둘 낳고 여전히 붙어있는 6기 유재훈, 한은진 커플임. 참, 우리 은진이 노래 정말 잘했다. 노래 한 번씩 부르면 남자 선배들 그 자리에서 그냥 막 넘어 갔다.(특히, 18번 이었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빠라밤.")

씩씩하다, 설악산 등정.
선후배 9명이 대청봉을 향하여 출발. 앉아있는 오른쪽부터 이미경(7), 기향미(5), 강인자(5), 양현숙(5), 남자들 좌로부터 남수현(2), 박진균(5)-체격은 저래도 진정한 산 사나이, 최영우(2), 탈반 야사에 등장하는 문제의 송기학(3)-당시 군인이었으나, 휴가 나와서 여자 친구도 없고 해서 우리가 데려 감. 현재도 저렇게 마른 걸로 생각하시면 안되고 지금의 싸이즈는 최현룡과 거의 흡사하다고 보시면 됨. 맨 오른쪽 김종욱(2).
- 글, 사진: 2기 김종욱
- 2000년 7월 3일 관리자 입수
1979년

탈꾼들의 주막(1기 와 2기)
당시에는 5월 축제 기간 중 동아리 별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대성로 입구 우측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는 막걸리, 파전 등으로 아주 인기있고 손님 많았던 주막으로 축제 내내 돈도 많이 벌은 걸로 기억되는데.(그때 1학년이라 번 돈의 행방에 관심 가질 수 없었음.) 사실 장사하면서 우리가 먹은 게 더 많았던 것도 같고. 맨 밑줄 왼쪽이 현재 독일 뮌헨대학에 있는 김희상(2), 맨 오른쪽은 미모의 김미혜(1)-1기 이춘화 선배의 아내, 가운데 왼쪽부터 김순범 서일대 교수(1), 앞치마 유용기(2), 키타 든 사람 김종욱(2), 큰 안경 최희영(1), 바로 윗줄 왼쪽 공포의 곽정심(1) 누나 와 조근만(1) 집사님, 서 있는 사람 좌로부터 권순학(1) 공인회계사, 참 인자했던 조임숙(1) 누나, 맨 우측이 머리 크다는 이상호 교수(2).
1980년

전북 임실 농악 전수시의 누구 생일 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전부 시커먼스 인데, 표정은 너무 밝다. 가운데 눈이 큰 이예성(3기, 당시 1학년)양의 생일을 맞아 100원 짜리 카스테라에 성냥개비를 나이대로 꼽아 축하해 주었더니, 감격해서 그런지, 고생해서 집 생각이 나서 그런지 두 눈가에 그만.... 맨 밑 박병택(2), 2번째 줄 좌로부터 박희성(3), 이예성(3), 유용기(2), 그 윗 줄 왼쪽 김종욱(2), 그리고 한계연(2), 4명 있는 왼쪽부터 조원민(2), 남수현(2), 안치흥(3), 인숙이(3), 맨 위가 경남 양산에서 약국 하는 한미혜(3)-지금도 찾아가면 항상 피로회복제 와 박카스 준다.

금잔디 강령탈춤 취발이 과장중.
취발이 : 조근만(1), 소무 : 양혜영(2), 노승 : 김종욱(2) 왼쪽에 의상입고 한계연(2), 한계숙(2)이 다정하게 앉아 있네. 생미과에서 중간에 불문과로 전과한 이 한계숙 선수 당시 전교에서 유명했다.
1981년

양주별산대 전수 시절의 3 총사.
야사에 나오는 바로 그 때 찍은 사진으로, 이상호(2)가 즐겨 내렸던 희생자들의 빨간, 그리고 까만 츄리닝 바지가 보인다. 그 날은 2기 한모 군(이름 못 밝힘, 결혼해서 잘 살고 있기에.)의 여자 친구(문모 양, 당시 Y대 2년)가 우리 면회 온다는 연락을 시외 전화로 받고(그때는 삐삐, 핸드폰 이런 것 없었음), 전수관 입소한 후 처음으로 머리 감고 이 닦은 날임.(물이 얼마나 차가왔던지.) 아침부터 수선을 떨은 덕분에 그 날 뭔가 맜있는 위문품을 듬뿍 받았는데...(아, 쵸코파이였다.) 좌로부터 김종욱(2), 이광호 동문회장(3), 이상호(2)-머리 진짜 디따 크죠 ?

탈반 4기 즐거운 야유회
4기들(참, 골치 아팠던 기수다. 지금까지도)이 어느 날 춤 연습 때, 입학하지도 얼마 안된 쉐파란 아해들이 건팡지게 항명 사건으로 빠따 맞은 적이 있었다(그때 주동이 김대영으로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 기분전환으로 당시 회장 김종욱(2)-왼쪽 두 번째 와 부회장 최인희(3)-맨 오른쪽 만 동반하여 1학년(4기)들과 동구능(?)가서 찍은 사진. 맨 위쪽 폼 잡고 서 있는 친구가 지금 탈반 유럽지부장(덴마크 거주) 김종보, 바로 왼 쪽이 지금 문일 중학교에서 완전 무게잡는 윤태현 과학 선생님. 빠따 사건 다 잊어 버리고 장난치는 모습들이 역시 순진하고 1학년 같다. 그런데, 맨 우측 밑 탈반의 종약서원 최현룡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아도 학생으로 보기 어렵다.

양주별산대 제문낭독
마당극은 어림 없고, 공연을 위한 제문도 사전 검열 받던 딱한 시대, 지금은 없어진 금잔디 광장의 상징인 조개탑(소라껍질이라고도 함)앞에서의 양주별산대 정기공연. 그때는 공연 때면 참 관람객 많았다. 공연 포스터가 붙으면 진짜 명륜동 일대 아줌마들도 구경하러 오셨다. 유용기(2) 아버님, 어머님, 시골집 아저씨는 단골로 오셨고... 지금 보니 머리 참 지저분하게 기네. 김종욱(2)입니다. 바로 뒤에 엎드려 있는 안치흥(3)의 엉덩이춤이 참 일품이었는데.(배역 이름이 생각 안나네.) 맨 우측에 우리 현주(4)가 보이고..

3기들 행복해서 크게 웃던 날
김종욱(2) 군대가기 전 날 시골집에서 환송회 하는 도중 3기들이 합심하여 시골집앞 사진관에서 찍은 기념사진.(술 먹다 1,2기 선배 와 4기 후배는 빼고 김종욱 과 3기들만 찰칵.) 선배 한 명 군대 가는게 그렇게 좋고 행복한 지 전부 다 활짝 웃고 있다. 줄무늬 남방이 김종욱(2), 바로 우측에 앉은 최인희(3)양만 슬픈 표정이다. 사진 맨 뒷줄 반창고 붙인 故 홍문선(약대 졸업후 의약사업을 하다 그만 금년에 암으로 타계함) 과 그 친구가 오른팔로 안고있는 故 이상준(불문과 졸업후 대전에서 신문사 기자 생활 하다가 작년에 타계함) 두 탈꾼의 모습과 그들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저버림이 다시 한번 안타깝고 가슴을 저미게 한다.
1984년

율전 마라톤 대회 4인방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축제 기간중 마라톤 대회가 있었음.(남자 3명에 여자 1명이 한 팀으로 뛰게됨.) 운동장 앞에서 출발전 대기 하면서 1장 찰칵.(다 뛰고 들어 왔을 때의 퍼져 있는 모습은 너무 처참해서 차마 공개 못 함.) 탈반 대표 좌로부터 한계연(2), 김성아(6), 최영우(2), 김종욱(2). 복학한 형들 과 계속 1등으로 같이 뛴 성아의 파이팅이 눈부셨으나, 그만 이 학생 전 날 술먹은 게 안 깨서 꼴인 직전 약 200미터 전방에서 전날 먹은 것 다시 눈으로 확인 하면서 퍼져 버렸다.(우리의 그때 그 시절 안주 없이 술 먹던 시대를 대변하듯 정말 물만 나왔다.) 교대로 등에 짊어지고 겨우겨우 들어가 그래도 10등 했다.(사람 일단 퍼지면 남녀 상관없이 엄청 무겁다는 것 깨달음.) 지금 내일신문 성문제연구소장으로, 제2의 구성애로 EBS방송에도 고정 출연한다는 우리 성아양은 오후에 벌어진 노래자랑에 나가서 민요를 걸지게 부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공연 마치고 한방.
거기가 무슨 큰 체육관이었는데..(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 학교측에서 체육관을 빌려 신입생 입학 축하 공연을 했던 걸로 기억됨.) 2기, 3기, 4기, 5기, 6기들의 얼굴이 두루 보임. 사진을 유심히 보면 제일 중앙에 웬 조그만 것들이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는데, 당시 1학년 때부터 저러더니, Now 애 둘 낳고 여전히 붙어있는 6기 유재훈, 한은진 커플임. 참, 우리 은진이 노래 정말 잘했다. 노래 한 번씩 부르면 남자 선배들 그 자리에서 그냥 막 넘어 갔다.(특히, 18번 이었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빠라밤.")

씩씩하다, 설악산 등정.
선후배 9명이 대청봉을 향하여 출발. 앉아있는 오른쪽부터 이미경(7), 기향미(5), 강인자(5), 양현숙(5), 남자들 좌로부터 남수현(2), 박진균(5)-체격은 저래도 진정한 산 사나이, 최영우(2), 탈반 야사에 등장하는 문제의 송기학(3)-당시 군인이었으나, 휴가 나와서 여자 친구도 없고 해서 우리가 데려 감. 현재도 저렇게 마른 걸로 생각하시면 안되고 지금의 싸이즈는 최현룡과 거의 흡사하다고 보시면 됨. 맨 오른쪽 김종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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