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민속연구반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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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史: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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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림픽을 치르던 88년도로 기억을 하는데, 여름 농활을 충북 음성 지방으로 갔었읍니다.
그 당시 저를 비롯한 탈반, 풍물패 얼, 단대 풍물패 등을 문선대팀으로 묶어서 농활 기간 중 1/3을
일을 하고 나머지 기간은 농활팀이 들어간 각 마을을 순회하여 공연을 하였읍니다.
너무도 뜻깊고, 즐겁게 공연을 치른지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버스도 없는 마을을 장구, 복색 짊어지고 산을 넘어 매일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며 공연
하는 모습이 마치 옛날 남사당패와 같았고, 마을에 도착했을때 마을 분들의 열열한 환영.....
그런데,
음성지역에서 농민청년회 회장이셨고, 이번 농활단을 총괄하여 이끌어 주셨던 박장균형님이
계셨읍니다. 아마 경운기로 몇 번이나 우리 문선대를 마을로 이동 시켜 주셨던 기억도 있고요.
그 당시에 함께 농활을 다녀오신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작은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이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넘치는 카리스마, 이글거리는 눈빛..... 전형적인 투사의 모습이었지요.

시간은 흘러 89년 2월 저는 휴학을 하고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그만 국방부에서 법무부로 차출이 되어서 XX 교도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답니다.
교도소에서 생활한 지 채 1년이 되었을까, 미결수(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고, 구속 후 재판이
진행되고 있은 사람)들이 수용된 미결사동(재소자중 미결수가 수용된 방)을 순찰하다가
어느 독방에서 파란 수의를 입은 장균이 형과 마추지게 되었읍니다.
( 참고 : 원래 독방에 수용되는 사람은 마약사범이나, 정신 질환자, 극도의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 또는 사회에서 저명한 인사였던 사람들이 주로 이나,  정치, 시국에 관련된 사람들은 주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분리수용, 독방생활을 했음.
   생활해본사람은 알겠지만, 0.8평의 독방에서의  이야기 상대가 없는 혼자만의 그자체가 고문임.)
얼마전 함께 술마시고, 노래부를던 동지를 교도소에서 한 명은 파란 수의를 입은 재소자로,
또 하나는 군복을 입은 교도관으로 상봉했던 그 우연한 황당함이란.......
이후의 상황들은 언급이 곤란하지만, 내가 지끔껏 살면도 경험했던 만남중에 가장 Never forget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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