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시차가 4시간씩이나 되지만 그래도 같은 미국땅에 있으면서
안부전화 제대로 하지 않음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댓글에서 형의 이름을 보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하려다가
여운을 오래 가지고 가고픈 마음에 편지로 대신합니다
직접 만나본지가 셈이 되지않을 정도로 오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이름에서 기억되는 추억이 여전하고 여럿이어서 혼자 지난 시간에 빠져봅니다
john dnever의 "take me home,country road"를 즐겨 불러 붙여진 별명이 무려 30년이 지나도
여전하게 생명력을 갖고 있으니 참 대단한 추억입니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almost heaven west virginia.....shenandoah river'"가
내가 사는 곳에서 1시간30분 거리여서 자주 가보았습니다 . sky line에서 내려다본 인디언들의
옛 터전들은 분명 노래가사처럼 아름답고 넉넉한 자연입니다
어느 가을에 천막을 치고 하루 야영을 하는데 자연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조용함 자체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추억처럼 모닥불 펴 놓고 밤 늦도록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떠들려고 단단히 준비했는데
10시 넘으니 산을 지키는 관리자들이 다니면서 더 이상의 소음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안내하여
주위를 보니 모두 취침에 들어가 참 당혹했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곰이 나오니 음식은 나무 꼭대기에 달아 놓아달라는 안내도 빼 놓지않으니
다른 세계는 다른 세계인것 같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이동시킨 "덴버"라는 이름이 어느새 80년으로 올려 보냅니다
전두환에 의해 휴교령이 떨어졌을 때 안전한 장소로 개개인의 집을 돌아가며 세미나를 했던 가운데
정릉에 상수네 집에서 아마도 "전환시대의 논리" 아니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토론했고
자연스러이 통일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아도 통일에 대한 가슴 저미던 느낌 보다는 명분과 당위적인 측면으로 이야기가 많았고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힘을 얻어가는 대세였던 상황에서
난 실향민의 자식으로 내 부모의 되돌아가고픈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왔었고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 보다도 원치않은 실향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통일을 주장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그 자리에 학술부장(?) 위치로 참석하여 내 뜻에 크게 동조해 주었던 형의 기억이 지금도 분명합니다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참 순수하고 열심이었던 시간들이었지요
형의 이름 하나에 30년을 넘나드는 추억의 여행 ......여전히 대단합니다
형의 댓글처럼 오이는 주렁주렁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웃지요
뒤 마당에 4그루의 토마토도 서리 한방 맞았는데도 잘 자라 너댓개씩 매달고 있고
부추는 오는 손님들에게 모두 나눠주다보니 정작 내 차례는 아직 없네요
작년까지 너무 좋은 수확을 얻었던 고추가 올해는 영 신통치 않네요
꼬부라지면서 맵기만 하고 영 숫자로도 모양으로도 작년만 하지 않습니다
옥수수는 3년째 다람쥐 공양에 모두 털어주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안치흥
오랜만에 이야기하려니 존칭으로 써 내려갔네
자연스러우면서도 왠지 낯설다
춘화형이 보면 화 내겠다 왜냐하면 춘화형에게는 철저히 반말하고 반말로 편지쓰고 있는데
그 후배에게 존대말로 하니 .........다음에는 반말이다........알았지 남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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